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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라도

[전남 여수] 전라좌수영 진남관과 임란유물박물관

알고르 2017. 3. 23.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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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여행 - 여수 가볼만한 곳

 

본격적인 여수 여행을 나서서 가장 먼저 충무공의 유적을 찾아 전라좌수영과 진남관 그리고 임란유물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저도 오해했지만 기세 좋은 외형 때문에 진남관을 수군의 지휘본부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전라좌수영의 중심건물로 진남관 자리에 있던 진해루라는 건물이 있었는데, 정유재란 때 불에 타버리고

 

그 자리에 선조 32년 삼도통제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새로 지은 객사가 진남관입니다.

 

 

 

진남관 아래에 있는  임란유물전시관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물과 무기 그리고 전라좌수영의 역사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조선 성종 10년 전라좌수영 모습입니다.

 

 

 

 

전라좌수영은 조선 성종 10년(1479)에 최초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에 혁파될 때 까지 400여년간 조선수군의 주진으로서 남해안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의 수군영이었다. 특히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이충무공이 거둔 해전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한 국난극복의 본거지로서 조선수군의 최고사령부였으며, 이후 지역의 정치와 행정의 중추가 되었다.

 

설영될 당시의 수군영의 대체적인 면모야 갖추었겠지만, 임란을 거치면서 제반시설은 크게 변모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난중일기]에 축성에 관한 기록이 자주 나타나는 것과 같이 1591년에 충무공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면서 한층 체계적으로 정비되었다.

 

헌종 13년(1847)의 허섬의 [호좌수영지]에는 전라좌수영의 영성과 병력, 군미, 병기 등이 상당한 규모로 기록되고 있어서 조선후기까지도 여전히 중요한 수군영으로서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773년을 전후하여 절도사 김영수에 의한 성곽 및 관아의 대대적인 중창으로 영성의 면모는 한결 일신되었다.

 

그르나 고종 32년(1895)에 영이 혁파되면서 방치되다가 일제치하로 오면서 영성과 관아건물은 훼천, 또는 방치되기에 이른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몇년 앞 둔 시점에서 영이 혁파되고, 1916년의 해면매축과 민가 조성은 영성의 인멸을 더욱 가속화시키면서 전라좌수영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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